맞벌이 부모의 힘든 점 – 워킹맘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고 싶다면(저출산 대책)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가지 제도가 얘기되고 시도됐지만, 정작 도움이 될만한 정책은 없었다고 보여진다.  이는 맞벌이 부부가 실제로 어떤 환경에 놓여져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어떤 현실이 기다리고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정치인들이 출산 휴가를 더 주네, 남자한테 휴가를 주네, 출산 장려금을 주네 이런저런 공약들을 내세우는데 이거 다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은 이미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출산 휴가 2달 더 준다고 아이를 더 낳지 않고, 출산 장려금 천만원을 받겠다고 아이를 낳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출산 정책 관련 입안을 하시는 공무원들이나 국회의원들이 아이들을 키운지 너무 오래 됐거나 처음부터 맞벌이를 하지 않아서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만, 맞벌이 부부에게 육아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을 대라고 하면 바로 “시간”이다.  이 시간은 몇 일의 휴가로 메꿀 수 있는게 아니고, 국가 시스템 차원에서 지원해 줘야 한다.

0~7세(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낮에 애를 볼 방법이 없다. 출산 휴가를 몇년을 준다한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까지 6~7년간은 낮에 애를 봐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어린이집에 맡길 수 밖에 없음

◊ 그러면 어린이집에 바로 맡기면서 맞벌이를 나갈 수 있느냐?  어린이집은 입학/전학을 하면 아이가 적응을 해야 한다고 보호자가 1주일~길면 한달까지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강요하고 있음.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울고 엄마 찾고 하는 것이야 이해하지만, 맞벌이부부로서는 이런 시간을 낸다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움

◊ 여기서 딜레마 발생.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려면 순위가 높아야 하는데, 순위가 높으려면 맞벌이여야 함.  그런데 맞벌이를 하려면 아기를 어린이집에서 봐 줘야 함.  따라서 맞벌이를 하고 싶더라도 현재 맞벌이는 안 하고 있는는 사람은 순위가 낮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음.  결국 보모(이모님)를 구해서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수 있을 때 까지는 돈을 주고 계속 보모를 쓰는 수밖에 없음

◊ 어린이집/유치원에 맡기더라도 부모는 시간에 쫓길 수 밖에 없음.  좀 힘든 직장을 다닌다고 하면 아침 8시 전후로 출근을 해야 할텐데 이 시간대에 출근을 하려면 출퇴근에 1시간 정도 걸린다고 봤을 때 어린이집/유치원이 7시 이전에 문을 열어야 함. 하지만 이렇게 여는 유치원은 존재하지 않고(유치원은 보통 8:30~9시 등교) 어린이집도 많지 않음. 따라서 부부 중 1명은 출근이 늦은(9~10시?) 회사에 다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한국에 이런 회사는 거의 존재하지 않음

◊ 어찌어찌 출근을 하더라도 어린이집은 7~8시 전후로 문을 닫기 때문에 부부 중 한명은 일찍 퇴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됨. 10시에 출근을 했다면 종일 근무(9시간)의 경우 칼퇴근을 한다고 해도 7시에 회사에서 나올 수 있으므로 어린이집에 오면 8시일 것이고, 9시 출근도 6시에 끝나고 번개같이 달려와야 어린이집에 7시에 도착할 수 있음.  따라서 야근 같은 추가 업무가 어렵기 때문에 회사에서 일 안 하는 사람도 낙인찍힐 가능성도 있음

◊ 어린이집이 아닌 유치원의 경우에는 어린이집보다도 아이를 맡겨놓기가 훨씬 어려운데 그 이유는 오후 1~3시쯤이면 프로그램이 끝나기 때문에 아이를 데려가야 함.  돈을 더 내고 방과 후 다른 학원을 보내더라도 3~5시에 끝나므로 역시 부모가 아닌 사람이 데리러 가야 함.  따라서 할머니/할아버지가 육아를 도와주는 집이 아니라면 돈을 주고 하교 도우미를 쓰는 수밖에 없음

◊ 아이에 대한 상담도 직접 와서 하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나 시간을 내기가 힘듬

◊ 아이가 아플 때는 더 힘듬.  등원 후에 아이가 아플 때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도록 요구를 받음.  이게 이러고 끝나면 그나마 문제가 적은데, 전염병으로 의심되는 경우 병원에 가서 완치 판정을 받을 때 까지 어린이집/유치원에 데리고 오지 말도록 하고 있음.  물론 다른 아이들에게 전염될 까봐 하는 조치이지만, 여러 날 아픈 경우에는 부모 중 한명이 출근하지 못하고 집에서 계속 아이를 봐야 함. (아이들이 어릴 수록 아픈 경우도 많고, 여러 날 계속해서 아픈 경우도 많음)

8~14세(초등학교)

◊ 어린이집을 겨우겨우 지나 초등학교에 가면 위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오히려 어린이집을 다닐 때보다 더 힘듬.  어린이집은 7~8시면 열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은 9시 등교라 역시 부부 중 한명은 늦게 출근해도 되는 회사에 다녀야 하고 이런 생활이 6년 동안 지속됨

하교 역시 1~3시라 방과 후 프로그램에 보낼 수 밖에 없고, 보내더라도 5시 전후에 끝남.  역시 도우미를 쓰거나 저녁까지 하루 종일 학원에 보내는 수밖에 없음

6~14세 공통(유치원 & 초등학교)

◊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린이집을 지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다니면 애들 다 키웠으니 편하겠다고 하는데 맞벌이부부에게 어린이집보다 훨씬 힘든 과정이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방학임.  몇 주~몇 달에 이르는 방학 기간동안 하루종일 누군가가 내내 돌봐줘야 하는데 맞벌이이다 보니 그럴 사람이 없음.  이러다보니 자녀의 방학이 맞벌이 부부가 1년 중 가장 싫어하는 기간이 되고, 그 기간동안 시골 할머니 댁에 보내거나 그럴 상황이 안 되는 사람들은 방학 캠프를 보내고, 캠프라고 해 봤자 몇일 안 되기 때문에 나머지 기간에는 하루 종일 학원 뺑뺑이를 돌릴 수 밖에 없음

나도 이런 현실을 모를 때는 어릴 때부터 학원 뺑뺑이 돌리는 엄마들 보면 교육열이 지나쳐 애들을 힘들게 한다고 욕했는데 부모 중 한명이 퇴근해서 돌아오는 저녁까지 애를 봐 줄 사람이 없으니 학원 뺑뺑이는 선택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닿게 되었다.

이러다보니 학원이 많은 곳에 학부모들이 몰리게 되고, 그러니 아파트 값이 치솟고… 이런 부동산 문제까지 덤으로 발생하고 있다.

요즘 아이를 기르는 맞벌이 부모라면 돈도 돈이지만, 이렇게 시간적인 문제에 부딪혀 도저히 아이를 더 낳는 것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특히 첫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런 어려움을 모르다가 막상 겪어본 후로는 어떻게 할 엄두가 안 나서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고 끝나버리는 수가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정리하자면,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가 아침에 일찍부터 애를 맡길 수 있고, 저녁 늦게까지 봐 주는 국가적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는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기르기는 정말 눈물나게 어렵다.   제발 이런 사실을 감안해서 별로 도움도 안 되는 정책을 내 놓지 말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정책을 내놓아 주시기 바란다.   또한 이러한 맞벌이의 시간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당연히 많은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날 것이다.

몇 년에 걸친 육아 휴직은 회사로서도 부담스럽지만 당사자로서도 시대에 뒤떨어져서 회사에 복직하기도 쉽지 않고 결국 경력단절이라는 굴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러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육아 휴직 x년 보장 같은 공약은 모든 사람들에게(직장인이나 고용주나)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이다.  남자도 1년 이상 직장에 다니지 않았다고 하면 감이 떨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잘 뽑지 않는데, 3년 이상 집에서 주부를 했던 사람을 누가 뽑아주겠는가?  다니던 회사에 계속 다니도록 정책을 만들더라도 휴직하던 동안 내 밑에 있던 내가 나와 같은 위치 또는 심지어 윗사람이 되어 있어 회사를 다니는 것 자체가 기분나쁘게 되는 일도 허다하고 몇 년간 쉬었기 때문에 회사 업무에 감을 다시 잡는데만도 몇 개월이 걸릴테니 회사로서는 손해일 수 밖에 없고 그런 사람을 피할 수 밖에 없다.  트렌드에 민감하거나 지속적으로 공부를 해야하는 업종이라면 이미 따라가기에는 너무 늦었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니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모가 시간 걱정 없이 (물론 돈 걱정도 크게 들지 않으면 더 좋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것만이 유일인 해결책이다.  1살부터 중학교 전후의 자녀를 오전 7시부터 오후 7~8시까지 걱정없이 맡길 수 있도록 정부에서 책임지는 육아/교육 시스템 을 만들어야 한다.

*2017년 1월 31일 최초 작성*

**2017년 2월 12일 업데이트**

좀 전에 EBS 미래기획 2030 중 ‘초저출산시대 아이가 희망이다’ 편에서 내가 위에서 한 것과 거의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봤다.  맞벌이는 하루 종일 아이를 맡길 데가 필요한데 그런 곳이 없어서 할머니, 외삼촌 등까지 육아를 도와야 하는 상황이고, 아침 일찍부터 늦게까지 맡아주는 공립어린이집은 턱없이 부족하고, 낮에 아이를 맡길데가 없으니 학원 뺑뺑이를 돌릴 수 밖에 없다… 육아 정책에 성공한 프랑스의 경우에는 국가 교육 시스템이 잘 돼 있어서  아주 어린 나이부터 맡길 수 있고, 아침 7시부터 등교 가능하다…  다 보진 못했지만 이런 내용들이었는데, 중간중간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야 유대감이 형성된다느니 아이를 키우기 좋은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된다느니 이런 원론적이고 별 도움 안 되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공감되는 내용이었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딱 퇴근시켜주는 회사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갑자기 일이 생긴다던가 회식을 해야 하는 경우에 매번 빠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홀부모 같은 경우에는 갑자기 일이 생겼을 때 대신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정시 퇴근하는 사회 분위기만 형성한다고 해서 절대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또 위에서 말했듯이 훨씬 더 큰 고민거리는 방학 등으로 인해 부모는 출근해야 하는데 아이는 갈 곳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것은 사회 분위기가 아닌 사회 정책으로 해결해 줘야 한다.  방학을 없앤다던가(이제 옛날처럼 냉방이 안 되서 방학을 꼭 해야 하는 사회도 아니고, 아이들이 방학을 쉬는 시간이 아닌 오히려 학원 뺑뺑이를 돌며 선행학습을 하는 시간으로 바뀌어 버렸기에 방학을 없애는 것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방학동안에도 어린이집/유치원/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봐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이런 문제들을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닐텐데 자꾸 돈이 들지 않는 ‘정시에 퇴근하는 문화’만 강조하면서 기업들에게만 그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퇴근 시간에 집중하다 보면 일을 제대로 할 수는 경우가 발생하고, 이런 부담으로 인해 가정주부로 돌아서는 여성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사회적인 육아 시스템 구축으로 인해 굉장히 많은 일자리가 생성될 수 있다는 점도 다시 한번 상기하고 부모들이 아이를 기르는 데 걱정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임시직을 만드는 것보다는 늦게까지 애들을 봐 주는 시스템을 국가적으로 건설하고, 그 시스템을 움직이기 위해 국가 재정을 사용하여 경기 활성화까지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