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제목을 보고서 ‘가고 싶어도 못 가니까 문제지, 누가 대기업에 들어가기 싫어서 안 들어가나’ 라는 말을 하는 분이 많으실 거라 생각한다.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긴 하지만, 들어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일단은 왜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누구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직장을 다녀봤기 때문이다. 중간에 했던 내 사업은 제외하고도 다녔던 회사만 6개에, 일반적으로 같은 산업 내에서 이직을 하기 마련인데, 나는 굉장히 다양한 산업에서 일해봤다(컨설팅, IT, 제조, 물류 등).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회사를 다닌 것보다 나를 좀 아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거의 항상 매출 규모가 몇 배 더 큰 회사로 이직을 해서 지금은 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에 다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많이 이직을 해 본 결과 내린 결론이 바로 ‘첫 직장은 대기업을 다니는 게 좋겠구나’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경력직 이직 시 대기업을 다닌 이력이 매우*10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내가 (매출) 규모가 더 큰 회사로 이직하려고 면접을 볼 때 자주 들은 얘기가 ‘이런 큰 회사 경험이 없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같은 종류의 질문이다. 안 괜찮을거 같았으면 면접을 봤겠는가? 생각해 보면 정말 하나마나한 질문이지만, 그래도 이런 질문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본인이 다니고 있는 회사보다 규모가 더 작은 회사에 다닌 사람에 대해서는 막연하지만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대기업 출신을 대할 때는 ‘그 회사에는 우리가 모르는 뭔지 좋은게 있을거야’ 내지는 ‘우리보다 아는 게 많을거야’ 같은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는 것이 씁쓸한 현실이다.
사실 나의 경험을 보면, 대기업 출신보다 중소/중견 기업에서 일을 한 사람들이 ‘업무 Scope’이 훨씬 넓어서 굉장히 다양한 일을 처리해 본 경험이 많고,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중소/중견기업 출신과 일하는 것이 편하다. M&A만 해도 나는 M&A Execution 이전 단계라고 볼 수 있는 ‘회사 전략’부터 M&A 후의 PMI(Post Merger Integration)까지 다 해 봤는데, 이런 폭 넓은 경험을 가진 대기업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대기업보다 더 돈도 많이 받고 사회에서 대접받는 IB(투자은행) 출신 중에는 전략과 PMI를 제외하더라도 심지어 M&A Execution 전체를 해 본 사람도 거의 못 봤다. 그래서 대기업에서 IB 출신을 모든 M&A관련 프로세스를 총괄해야 하는 임원으로 데려오는 것만큼 바보짓이 없다고 자주 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것을 알지 못한다.
대기업 출신을 선호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면피’일 것이다. 대기업에서는 회사를 오래 다니기 위해 사내 정치가 중요하고 그 중에서도 잘못된 일의 책임을 피하는 ‘면피’가 상당히 중요하다. 만약 새로 뽑은 경력직에 문제가 있다면 누가 그 사람을 뽑았는지를 묻게 될텐데, 누가 봐도 질문을 던질만한 이력이 있다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따라서 ‘안전빵’으로 가려는 욕구가 많고, 이 안전빵의 대표주자가 바로 대기업 출신을 뽑는 것이다.
이 밖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다양하게 이직하면서 몸으로 느꼈던 것이 바로, 경력 이직 시 대기업 출신이 월등하게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참 이직 쉽게 잘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매출이 더 높고 더 유명한 회사로 옮기기 위해 수없이 많은 채용 공고를 검색하고, 헤드헌터에게 연락하고, 이력서를 넣었으며, 인터뷰도 많이 했고, 또 떨어지기도 많이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직을 많이 하면 할수록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 ‘처음에 큰 회사를 다녔더라면 이렇게까지 이직이 어렵지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나마 스펙도 괜찮고 이직을 자주 하면서 조금씩 더 규모가 큰 회사로 이동을 해서 여기까지 왔지 한방에 큰 회사로 가려는 사람은 아마도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서류와 면접으로 지원자의 실력을 가늠하는데는 너무나 큰 한계가 있고, 결국 그 사람이 다녔던 회사 이름을 믿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만약 본인이 향후에 직접 창업을 하거나 기술을 배우기 보다는 20~30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겠다고 결정했다면 첫 회사는 힘들더라도 대기업을 도전하시길 추천한다. 내려가긴 쉽지만, 올라가긴 매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