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공공건물은 모양보다 사용자들의 용도에 맞게 만듭시다. (xx시립도서관을 사용하며 세금 낭비를 경험하다)

요약

  • 세금으로 짓는 건물들은 멋있게 만들어서 정치인 본인의 업적으로 남길 생각을 하지 말고, 이용자들의 용도에 맞게 지어야 한다
  • 그 건물이 도서관이라면 책 찾기 좋고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갖춰야 한다
  • 공공건물 건축에 대한 법규라도 만들어서 세금이 잘 쓰여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즘 집에 있으면 너무 유튜브만 보고 있어 가능하면 뭐라고 공부를 하려고 시간이 날 때 도서관에 가려고 하고 있다. 이 도서관은 개관한지 1년 남짓한 매우 새 건물인데 사용할 때마다 문제점이 너무 많이 보여서 몇 가지 지적하려고 한다.

 

이 도서관의 가장 큰 문제는 이용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리 부족의 가장 큰 원인은 건물의 구조 문제이다.  건축 부지는 큰데 건물이  ㄷ자로 만들어져 있어 가운데는 전혀 사용할 수가 없다.  건축법상 규정을 맞추기 위해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던건지, 가운데는 어린이들이 뛰 노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건지, 이것도 아니면 단순히 건축적으로 특이한 모양을 만들고 싶었던 건지는 알수 없지만, 도서관 가운데 공간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죽은 공간이 되어 있다.  이렇게 사용이 불가능한 공간이 많다보니 이용자들이 사용할만한 공간이 충분히 나오지 않는다. 

또 다른 자리 부족의 원인은 가구이다.  이 도서관의 거의 모든 책상은 이 도서관에 맞춰 제작한 커스텀 가구이다.   기성품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기둥 위치에 맞게 맞춤 제작을 하다보니 책상  하나의 길이가 10m씩 되고, 건물 모양을 따라 구부러진 형태도 많다.  이러한 책상들은 고장나면 수리나 교환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용자가 늘어 책상수를 늘리거나 배치를 바꾸려고 해도 뜯어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결국 책상 부족으로 인한 좌석 부족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책상 커스텀 제작 제품으로 인한 문제점은 사용의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단순한 불편함 정도가 아니라 이용자의 신체적 문제를 야기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 책상은 내가 사용해본 어느 책상보다도 상판이 높다. 아마 창틀의 높이와 맞추려고 일부러 이렇게 제작한 것 같은데, 너무 높다보니 팔이 매우 불편한 위치에 자리하게 돼 이 도서관을 하루만 이용해도 어깨에 심각한 무리가 온다. 

책상만 그런게 아니라 의자도 심각하다. 카페에 온 느낌을 내려고 이렇게 만든 것 같은데 여러가지 형태가 있지만 하나같이 인체공학적이지 않아서 사용하다 보면 허리에 엄청난 무리가 온다.  나만 이렇게 불편하게 느끼는게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한 공간에 여러가지 형태의 의자들이 뒤섞여 있다.  이용자들이 사용하면서 불편하니까 의자를 한두개 바꾸다 보니 뒤죽박죽 섞였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책상도 불편한데 의자까지 이러다보니 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허리가 너무 아파서 집에 가서 허리 복대를 가져온 날도 있을 정도다.  쇠나 플라스틱이 아닌 나무로 만들 의자가 가격도 싸지 않을텐데 불편하기까지 하니 이런 돈 낭비가 또 있을까 싶다.

 

도서관 이용자로서 또 너무 불편한 점은 과다한 창문의 사용에서 온다.  외장을 유리로 해야 예쁘다보니 외부 벽 자체가 전부 유리인데 이로 인한 비효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일단 햇빛으로 인해 도서관 사용에 큰 제약이 있다.  ㄷ자 건물의 벽면이 동-남-서를 향하고 있어서, 동쪽 창문쪽 책상은 아침에는 눈이 부시고 더워서 공부를 할 수가 없다. 블라인드를 내려도 눈이 너무 아프고, 여름에는 그 열기까지 느껴져 사용이 불가할 정도다.  오후가 되면 남쪽 창이 더워지고 너무 밝아져서 블라인드를 내려도 남쪽 책상은 사용이 어렵고, 오후 늦게는 또 서쪽 창문이 그렇게 된다.  결국 그나마 햇빛의 영향없이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얼마 안 되는 북향 책상과, 도서관 중간에 있는 테이블 몇개 정도이다.  (심지어 북향도 맑은 날에는 컴퓨터 화면을 보기에 눈이 아프다) 

통창으로 인한 또 다른 문제는 에너지 손실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겨울에는 도서관이 아침에 문을 열자마자 너무 춥다.  히터를 온 종일 가동하는데도 겨울에 해가 지면 그때부터 또 너무 춥다.  여름은 정반대이다.  에어컨을 하루 종일 풀가동하는 것 같은데, 햇빛이 내려쬐는 곳은 블라인드를 내려와도 그 열기가 고스란히 얼굴에 전달된다.

그렇다고 블라인드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동 블라인드이고 같은 벽면은 똑같이 동작을 하기 때문에 창문 하나만 블라인드를 내릴 수는 없고 내리려고 해도 사서에게 얘기를 해야 된다.  나는 내 앞의 블라인드만 내리고 싶은데 한면을 모두 내려야 하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블라인드 내려 달라는 말도 편하게 못 한다.

이렇게 사용이 불편한 블라인드마저 못 내리는 곳도 있다.  책상을 만들면서 예쁘게 하려고 책상 윗부분을 아치 형으로 만든 곳들이 있는데 블라인드가 아치에 걸려 더 이상 내려오지 않는다.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은 햇빛을 고스란히 얼굴에 받으며 공부해야 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사용해야 하는 구조의 도서관에 도대체 왜 전면 통창을 사용한 것인지, 냉방과 난방을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곳에서 왜 이렇게 열 효율이 떨어지는 유리창으로 전면을 두른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운영도 문제다.  이 도서관에는 자율학습실(열람실)이 없다.  나뿐만 아니라 매우 많은 이용자들이 책을 보는 용도보다 공부하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는데, 별도의 자율학습실이 없다.  그러다보니 자리들은 자율학습하는 이용자들에게 점령당해 정작 책을 빌려서 읽을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자율학습실은 대게 아침 7시 정도에 문을 열지만, 여기는 도서관이 오픈하는 9시에 와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차 없이 걸어서 오기는 어려우니 일찍부터 학생들의 수요가 없을 거라 생각해서 자율학습실을 만들지 않은 것일까?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도서관 내부가 대부분 자기 공부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고, 주말에는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좌석이 부족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리가 부족해서 난리인 도서관이지만 한편에서는 엄하게 공간을 낭비하고 있다.  중간중간 넓직한 공간에 소파들이 위치하고 있는데, 소파의 구조가 특이해서 보기에는 괜찮지만 사용하기에는 매우매우 불편하다.  한마디로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고 남에게 보여주기식 배치를 한 것이다. 이렇게 불편한 소파이지만 워낙 자리가 부족하기에 오후가 되면 이 소파에도 자리가 없다.   

   

건물은 ㄷ자로 만들어 중간에 죽은 공간을 그렇게 많이 만들어 놓고 고 가구 배치마저 엉망으로 해서 자리도 없는데, 주차장 마저도 매우 부족하다.  이 도서관은 주거지와 동떨어져서 접근이 매우 제한적인 곳으로 이용자의 99%가 차를 쓸 수 밖에 없다.(시골이라 대중교통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도 도서관 건물 앞에는 30대 정도의 주차 공간밖에 없다.  아무리 그래도 시립 도서관인데 이용자가 30~40명 밖에 없을리가 있나?  그래서 대부분의 이용자는 길 건너편에 세우고 와야 한다.  도서관 2층에 어린이 도서관이 있다 보니 어린이들도 많이 방문하는데 길을 건너야 하는데 위험하기도 하고, 도서관이 언덕에 위치해 올라오기는 쉽지가 않다.  가구과 모양 내는데 쓸데없는 돈을 쓰고, 공간을 낭비하는 대신 주차장을 어떻게 더 편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수 밖에 없다.  시골이라 서울만큼 주차장이 딸린 부지 찾는게 어렵지도 않았을 거고, 남는 공간을 잘 정리해 주차타워를 만들거나, 건물이 언덕에 있는 특성상 지하주차장을 만들수도 있을 것 같다. 

주차난은 이 도서관에서 전시회나 강연회로 쓰일 때는 더욱 심하다.  기존 도서관 이용자 만으로도 주차장이 한참 모자라는데 다른 행사까지 하니 자리가 남아 날 리가 없다.  그래서 행사가 있는 날에는 봉사자(아마도 봉사 점수를 위해서 고등학생들이 하는 것인 듯) 여러 명이 나와서 다른 주차장으로 가라고 안내하고 있다.  강연회가 열릴 수 있는 강당, 소모임/동아리/평생학습장을 할 수 있는 소규모 강의실까지 한 건물에 몰아놓고 사람이 몰릴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한번도 안 해 본건가?

 

이 도서관을 이용할때마다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아고 올때마다 눈에 밟혀서 이 글을 안 쓰고는 베길 수가 없었다.  또, 이 도서관에 올 때마다 서울 동대문의 DDP가 떠오른다.  DDP는 행사로 인해 1년에 한두번씩 가는데 내가 가 본 어떤 건물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최악의 공간 활용성을 가지고 있다.  전혀 실용성이 없는 공간 디자인을 했다는 얘기다.  그러니 당연히 사용하는 사람도 없고, DDP뿐 아니라 그 주변의 상권까지 다같이 죽여버리는 효과를 낳고 말았다.  유명한 건축가가 만든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쓸모도 없이 서울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건물.  과연 국민의 세금을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지?  돈 뿐만 아니라 가장 제한적인 공공재인 공간을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건지? 

 

이런 문제가 없도로 공공건물을 짓고 인테리어를 할 때는 법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사용자가 목적에 맞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전기를 포함한 세금을 낭비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고, 감사를 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건물을 예쁘게 지어서 본인의 치적에 사용하는 건 본인 돈으로 개인건물에서나 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