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이 글을 써야지 하면서도 귀찮음에 안 쓰다가 카카오톡 사태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 이번 기회에 쓰기로 했다.
주위에 이런 저런 이유로 젊은 나이에 임원을 단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큰 공을 세워서, 어떤 사람은 대표나 오너랑 친해서, 어떤 사람은 정치적인 이유로 단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달았건, 젊어서 임원을 단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감이 충만하고, 공을 세워서 임원으로 오래 가거나 더 위로 승진하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게 좋게 쓰이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를 많이 보지 못했다. 대게는 계속 임원을 유지하거나 승진하기 위해 이기적이거나 무리한 결정들을 한다.
이기적인 결정의 예를 들자면, (내가 하는 일이기에 너무나 많이 봐 온) 회사에는 큰 손해를 안겨줄 가능성이 높지만, 단기적으로는 본인의 성과로 내세울만한 큰 규모의 M&A(기업 인수)를 하는 것이다. 물론 임원 본인은 이게 회사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설파하고 다니지만, 실제로는 검토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물론 내가 임원에게 이런 문제점을 이야기해도 전혀 듣지 않고 밀어 부친다.) 실제로도 이렇게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 딜들은 대부분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왔다.
또다른 이기적인 결정의 예는, 본인의 경쟁상대가 될만한 능력좋은 임원이나 직원이 회사를 나가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건 회사의 입장에서 정말 최악인데, 리더십이 있거나 회사를 위해 바람직한 결정을 하는 사람, 오너에게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 and/or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 무슨 이유에서건 쫓겨나고, 그와 반대인 사람이 남아서 꼭대기까지 올라가 회사의 근간을 흔드는 일을 여러 번 봤다.
무리한 결정의 예로는 바로 카카오톡의 케이스를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본인의 성공 방정식을 똑같이 따라 하려고 하거나, 기존에 회사에서 하던 것과 정반대의 것을 도입해 변화를 이끌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카카오톡 업데이트 내용이나 이와 관련된 뉴스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전자도 포함될 것 같지만) 아마도 후자가 아니었나 싶다. 본인의 입지를 만들고 기존 의사결정자(잠재적 경쟁자)들을 바보로 만들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기존에 있던 유산(legacy)를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것이다.
LG전자의 핸드폰이 왜 망했는지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그 중에 내가 가장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설은, 젊은 임원(운이 억세게 좋아 최연소로 임원이 된 사람)이 회사에서 본인의 필요성을 만들려나 보니, LG 휴대폰은 남들과 달라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 자꾸 특이한 기능을 집어 넣었고, 이걸 검증도 제대로 못 한 채 제품으로 내놓다 보니 특이하지만 휴대폰의 기본기에 충실하지 못한 휴대폰이 연이어 나왔다는 것이다. (G 시리즈 휴대폰이 매번 혁신적인 하드웨어들을 탑재했지만, 제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심한 경우에는 무한 부팅에 빠져 사용이 불가능한) 고질적인 문제가 반복되었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면서 결국 소비자의 신뢰 하락 -> 매출 감소 -> 적자 발생 -> 휴대전화 사업부 철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카카오톡도 새로 온 젊은 임원이 (아마도 연봉도 매우 높이 왔을 듯) 본인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게 위해 기존과는 다른 걸 도입하고자 했고, 기존 임직원들의 의견은 무시한 채, ‘나는 맞고 너희는 틀리니 내가 시키는대로 해라’ 라는 식으로 진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기존과 다른 새로운 걸 도입한다는 것 자체는 전혀 나쁜 일이 아니지만, legacy가 왜 잘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나 뭐가 문제인지에 대한 파악 없이, 또 새로운 것을 검증하면서 점진적으로 도입하려는 노력 없이 단시간에 본인만의 성과를 내려는 욕심이 결국 회사 자체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굉장히 많은 회사들을 다니면서 느낀 점 중에 하나는, 처음에는 ‘이건 말도 안 돼’ 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알고 보면 그렇게 진행해 온 이유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했다는 걸 이해하고 나서 개선점을 찾아야지, 남들은 다 멍청해서 그런 방식으로 해 왔고 나는 똑똑해서 그걸 한방에 개선해 주겠다는 오만함을 가진 사람이 임원이 되서는 위험하다. 또, 빠른 시일 내에 나의 존재감을 보여주겠다는 패기와 자신감으로만 똘똘 뭉친 임원은 회사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회사는 정말 인사가 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