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쪽에 있다보면 이직 시 많이 받는 인터뷰 질문이 “얼마짜리 딜까지 해 봤느냐?”이다. 우리 회사에서 몇 조짜리 M&A 딜을 하려고 해서 사람을 뽑는데 네가 그걸 할 수 있겠냐는 의도로 물어보는 것으로, 이 질문에는 큰 딜을 해 본 사람일수록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리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이 전제 자체가 완전히 틀린 것이다.
내가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다양한 출신(기업(SI), PE(FI), IB, 회계법인, 법무법인)의 사람들과 M&A 일을 해 봤는데 그 때마다 느끼는 점은 (전체 M&A를 진행하는 것과 관련해)
- (유명한) IB출신이 가장 모르고, (유명할수록 더욱 모른다)
- 근소한 차이로 대기업에서만 M&A를 해 본 사람이 모르고,
- 반대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작은 기업(중소기업은 M&A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중견기업 수준)을 다니면서 M&A을 배운 사람이다.
아마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일 것이다. 왜일까?
여러 번 얘기했지만, IB(Investment Bank)는, 특히 Global IB의 한국 branch 인력은 거의 대부분 영업직이다. Global IB의 본사나 지역 HQ(아시아는 보통 싱가폴이나 홍콩)에는 산업(industry) 전문가, 기술(technology) 전문가, 경제 전문가 등 다양한 expert들이 있지만, 한국에 있는 IB 인력은 Seller와 Buyer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많은 경우 한글과 영어 통역) 해 주는 게 업무의 90%이고, 부가적으로 실사 시 client의 호텔/식당 예약 등 잡일을 담당하며, 경우에 따라 valuation 모델을 만들어준다. IB는 자기 돈으로 딜(M&A 매물을 사거나 파는 일)을 하는 경우도 드물고(특히 한국 지점), 거래가 성사되어야 돈을 받는 success fee 기반이기 때문에 이 딜이 자신의 client에게 도움이 되건 안 되건 딜이 성사되는 방향으로 조언을 한다. 따라서 자신이 인수 후 이 회사를 어떻게 사용할지 전략적인 고민을 해 본적도 없고, 실사(회계, 법률) 결과에 대해 별다른 관심도 없으며, 회계/법률 지식도 거의 없고(뭔가 관련된 것을 물어보면 본사에 확인해 볼께요 내지는, 변호사에게 물어볼게요 등의 답이 99%를 차지한다), PMI를 해 본적도 없고, 보고서를 써 본적도 없다. 따라서, 본인이 진행했다고 주장하는 대형 deal의 숫자는 엄청 많을 수 있지만, 알고 있는 핵심 내용은 하나도 없고, 그 프로젝트에 각 회사별로 누가 실무를 했는지 사람 이름 아는게 거의 끝이다.(그래서 IB 출신이랑 얘기를 하다보면 대화의 시작과 끝이 거의 그 회사의 누구안다는 내용이다)
대기업에서만 M&A를 해 본 사람이 모르는 이유는, 회사 내에 너무나 많은 부서가 있고 그 부서들에게 권력이 분산되어 있는데 기인한다. 전략 검토는 전략팀, 사업/제품 검토는 사업팀, 회계 실사는 외부 회계법인에서 한 것을 회계팀이 이해도 제대로 못한 채 사업부 실무자에게 전달만 하고, 법률 실사 역시 외부 법무법인에서 한 것을 법무팀이 제대로 이해 못한 채 전달하고, Valuation은 어떤 곳은 외부 회계법인을 시키거나, 어떤 곳은 IB를 시키거나, 아주 가끔은 내부적으로 진행하는 등 모두 역할이 나뉘어있어 M&A 담당부서는 최고 경영진에 대한 보고 일정 잡기, 중간에 M&A 실무자들에게 보고서 써 내라고 닥달하기, IB와의 커뮤니케이션 정도만 하기 때문에 코디네이션 역할 말고는 별로 해 본게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반면, 중소/중견기업에서 M&A 실무를 했던 사람들은 회사에 적절한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걸 본인이 다 해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략 만들기, long list와 short list(인수 후보군 리스트) 업체 찾기, 관심 업체 연락하기, 관심 업체 자료 검토하기, 간단한 valuation 직접 해 보기, 협상, IB/회계/법무법인 선정, 실사, 실사 보고서 내용 파악, 계약서 만들기, 내부 보고서 만들기 등 안 해 본 것이 없고, 심지어는 여기에 공시나 IR까지 하는 인원도 있다. 그래서 M&A와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해 본 인력이 길러지게 된다.
게다가 작은 회사들은 M&A에 쓸 자금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상황이 안 좋거나,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회사의 인수를 검토하는 하는 경우도 많아서 발생 가능한 문제점에 대해서도 경험이 많고, 복잡한 거래 구조에 대해서도 익숙한 경우가 많다. 사실 Cross-border(해외) 딜 경험을 높게 쳐 주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들이(대기업 임원들 포함) 잘 모르는 사실 중 하나가, cross-border(해외) 딜은 IB/회계법인/법무법인 등 많은 advisor(자문사)들이 같이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M&A 실무자가 할 일도 적고, 구조도 상대적으로 간단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소/중견 기업 출신 M&A전문가들이라고 하면, IB나 대기업 출신에 비해 학벌 등 스펙이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경험해 본 딜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훨씬 작다보니,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별 경험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IB나 대기업 출신들은 비싼 몸값에 이직하고, 중소/중견 기업 출신들은 면접 갔다가 ‘겨우 몇십, 몇백억짜리 딜 해 본 사람이 조단위 딜을 할 수 있겠어?’ 같은 얘기나 듣고 오게 된다. 뽑는 사람들이 아는 게 없는데, 사람을 제대로 보는 눈이 있겠나?
(회계/법무법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렵고, 더럽고, 복잡하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서 법을 잘 알아야 만들 수 있는 딜 경험이 많은 곳은 작은 로컬 회계/법무법인 출신들인데 삼일/김앤장 등 큰 규모의 업체 출신들이 무조건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는다. 물론, 가능하면 삼일/김앤장에서 몇년 간 일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배운 후 작은 곳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이 가장 좋긴 하다)
하여튼 M&A 업무 담당자/책임자를 뽑을 때 무조건 겉으로 보이는 스펙이나 deal size만 보지 말고,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해 봤는지 확인을 해 봐야 한다.
(요즘 같아서는 내가 이런 걸 검증해 주는 대행 서비스를 해야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