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관련 조언 글에서도 (전문직이 될 수 있는) 자격증을 따라고 얘기한 부분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
요즘 취업이 잘 안 된다니까 너나 나나 자격증 따기에 바쁘다고 알고 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딴 자격증이 소용이 있을지에 대해 고민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고, 한 때는 자격증 무용론까지 주장하던 사람이다.
(여기서 언급하는 자격증이란 단순히 스펙을 높이는데 쓰이는 자격증이 아니고 전문가로 인정 받고, 그 기술을 통해 창업까지 가능한 자격증을 얘기합니다.)
일을 하다보면 자격증이 전혀 없는데도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있고, 굉장히 따기 어렵다는 자격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못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자격증이 없지만 일을 잘 하니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건 일하는 사람의 입장이고, 뽑는 사람의 입장이 되면 다르다는 것을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다.
돌이켜보면 나도 과거에 사람을 뽑으면서 이력서에 괜찮은 자격증(회계사/변호사/세무사 등 1년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부어야 취득 가능한 것들)이 적혀 있으면 ‘얘는 적어도 공부는 열심히 했나보다’ 내지는 ‘이론은 대부분 알테니 실무를 어느 정도 아는지만 검증하면 되겠다’ 정도의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반면, 이런 자격증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실무와 이론을 어느 정도 아는지 검증하기 위해 면접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건 내가 나와 같이 일할 사람을 뽑을 때의 얘기라 그리 많은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최근에 내가 이직을 알아보면서 나의 일이 되다 보니 왜 그동안 자격증을 따지 않았는지 많은 후회를 하고 있다.
우선 이직을 위해 이력서를 헤드헌터들에게 뿌려놓으면 연락이 와서는 많이 하는 얘기가 “혹시 (회계사) 자격증은 없으시죠?” 이다.
내가 하는 일이 M&A다 보니 회계 관련 지식이 상당히 중요해서 업무를 하면서 배우기도 하고 스스로 공부도 해서 회계사/회계팀 구성원, 증권 analyst 등을 제외한 사람 중에서는 회계 지식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이렇게 M&A쪽에서 경력이 쌓이고 직급이 올라가다보니 CFO나 이와 비슷한 위치의 관리자 포지션에 대해 오퍼들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문제는 내가 회계팀에 속해서 일한 경력이 없다보니 나를 고용하려는 사람들이 내가 회사의 회계/재무를 잘 관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잘 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한들, 이걸 객관적으로 증명하기가 워낙 어렵다보니 자격증부터 물어본다고 생각된다. 또한, 같은 이유로 구인을 의뢰하는 기업 쪽에서도 ‘(회계사) 자격증 소지자 우대’라고 써 놓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게 말이 우대지, 서류 통과냐 탈락이냐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나의 경우야 괜찮은 학력에 경력도 나쁘지 않다 보니 이력서를 제출하면 면접을 보자는 경우가 상당히 많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직장 초년생들의 경우에는 자신이 아는 것을 글자로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 보니 자격증의 보유 여부가 당락을 결정짓는 데 굉장히 중요할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면접까지 가더라도 그 검증의 정도가 매우 다를 수 있다. 피면접자가 이론을 알고 있다고 생각되면 실무 경험만 확인하면 되지만, 둘다 검증이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면접 대부분의 시간을 이 사람이 해당 업무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검증하며 보내야 한다.
나도 최근에 이러한 경우를 겪었는데 이런 면접에 가면, 이력서에 있는 나의 경험을 불신한다는 느낌이 들어 불쾌하기 하고, 시간의 대부분을 지식을 테스트하는데 쓰다보니 스트레스의 정도도 상당히 높다. 결국 면접이 서로 맞는지를 알아가는 소통의 시간이 되기보다는, 말로 시험을 보고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경력이 쌓일수록 면접은 회사가 나를 일방적으로 테스트하는 시간이 아닌, 회사와 면접자가 서로 잘 맞을지에 대해 확인하는 시간이 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무튼, 내가 다른 글에서는 ‘자영업을 할 수 있기 위해 (전문직이 될 수 있는) 자격증을 따야 한다’라는 포인트로 얘기를 했다고 하면, ‘더 나은 직장 생활을 위해서도 자격증을 따라’라는 얘기를 추가로 하고 싶다.
결국 똘똘한 자격증이 직장 생활 중에는 훨씬 더 좋은 기회를 열어주고, 직장 생활이 끝나고 나서는 자영업의 길까지 열어준다는 것이다.
다만, 결혼을 하고 애들이 생기고 나서는 자격증 공부하기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대학생들은 학교 다니느라 바쁘고, 취업해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 돈 쓰는 재미에, 또 일하느라 바쁘겠지만, 이 때 몇년만 더 고생하면 향후 수십년이 훨씬 나아진다는 점을 명심하고 꼭 괜찮은 자격증을 준비해 놓으셔서 나처럼 나중에 후회 하시는 일이 없으시길 바란다.
관련 글
[직업 선택에 대한 조언] 1 (직장을 찾고 있는 이 나라의 많은 청년들에게)
[직업 선택에 대한 조언] 2 (회사 내에서 자영업의 기반을 마련하라)
[직업 선택에 대한 조언] 3 (더 나은 직장 생활을 위해서라도 자격증을 따라)
우연히 들어왔다가 글 남깁니다. 저도 내년이면 40이라 많은 생각이 드는데요. 이전 글을 보니 회사생활을 어차피 퇴직해야 하니 창업을 시작하셨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이 유효하신가요? 저도 앞으로 생활이 막연히 걱정이 되는데, 기술을 배우자니 아는 사람이 없어서 배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고, 자영업도 요즘 힘들다고 난리니 어떤 걸 해봐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네요.
준비 없이 창업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창업이 절대 만만치 않고 그 중에서도 식당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심지어 앞으로 외식은 훨씬 더 어려워질거라 생각합니다.
회사 다니시는 동안 엄청난 노력으로 준비하셔야 합니다. 먹고 살 수 있는 자격증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시거나, 자격증이 없이 도제식으로 배워야하는 기술의 경우 그걸 배우면 먹고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면 적어도 2~3년은 먹고 살 준비 해 놓고 배우시기 바랍니다. 외식업을 하시려면 (i) 식당의 핵심이 될 레시피 몇 개 정하기 (ii) 틈틈이 최소 수개월 가게 자리 보러 다니면서 감 익히기 (iii) 주말에 남의 식당에서 최소 6개월 이상 일하면서 가게 돌아가는 것을 익히고 사람 다루는 법 배우기 정도는 해 보셔야 됩니다. 식당 창업 관련 책들이 많으니 읽어보시면 간접 경험들이 쌓일 겁니다.
40이 넘은 나이로 1년 이상의 공백기가 생기게 되면 회사로 다시 돌아가기란 불가능하다고 보시는 게 현실적일 겁니다. 따라서 모든 준비를 다 해 놓고 자영업에 뛰어 드시던지, 그게 아니라면 반대로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시길 추천합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자영업, 특히 식당은 추천하시지 않으시는군요. 회사는 잘 버텨도 50대 초반이겠지요… 사실상 다른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말씀하신 부분은 자격증이나 도제식 기술인데… 도제식 기술은 인맥이 없으면 힘다는 말이 많은데 안타깝게도 인맥이 없고, 자격증이 남네요. 요즘 이래저래 검색해보니 전기기사 자격증이 있으면 밥은 먹고 산다고 하던데 전기기사 자격증을 준비하는 쪽으로 생각중입니다. 관련 전공은 아니지만 학점은행제(?)를 이용하면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알아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인데 대학원도 나오시고 연구원 일도 하셨었고 M&A 쪽에서도 커리어를 쌓으신 두루두루님의 경험과 생각을 좀 더 자세하게 듣고 싶습니다. (두루두루님의 다른 글에서 조언을 구하는데 주저하지 마라고 하셨기에 ㅎㅎ)
연구원, 교수, M&A 금융쪽 커리어, 그리고 M&A 변호사. 이 네가지의 커리어를 직접 경험 하시거나 옆에서 그러한 분들을 가까이서 지켜보셨을텐데 각각의 장단점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여기서 세부 질문들이 더 있습니다.
여러 글에서 인생 멀리 보고 (기술을 가진) 전문직종을 선택하라 조언하셨는데 사회과학쪽에서의 교수라는 직종은 전문성이 있을까요? 테뉴어를 언제 어떻게 받을지 모르는 교수라는 직업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 M&A라는 분야에서 CPA나 변호사 자격증 없이 커리어를 계속 이끌어 나가는데 이직 외에 단기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힘든 점이 무엇이 있을까요? (참고로 저는 여자입니다. M&A IBD 금융쪽으로 성공하신 여자 멘토를 인터넷으로 찾기엔 참 어렵더군요.)
이러한 질문들을 하는 제 배경을 조금 설명하자면:
저는 재작년에 개별연구를 하며 스트레스 받다 막판에 재미를 찾아 연구 쪽의 커리어가 어떨까라는 생각에 이번년 석박사 지원을 했습니다.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회과학 쪽인데 이 길을 계속 걸으면 연구원이 되거나 타이밍과 운이 맞으면 교수가 되겠죠. 한편 경제학부로써 뒤늦게 M&A업계가 매력적으로 보이고 그쪽으로 지금이라도 준비를 해 볼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가령 금융권에서 일을 찾아본다던가 로스쿨을 준비할 수 도 있겠죠.
여러가지에 관심을 두고 정작 하나의 일에 확신이나 적성을 기르지 못해 지금에야 이렇게 고민하는 제가 답답하기도 합니다.. 미국 특성 상 제 주변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저만 뒤늦게 방황을 하는 것 같네요 ㅠㅠ 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엔 각 커리어면의 선택에 어떤게 따르는지에 대한 지식/경험/내공이 너무 부족하네요ㅠ특히 가족 중에는 저 위 네가지 커리어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신 분이 정말 한 분도 없어 두루두루님의 생각과 경험을 더욱 더 듣고 싶습니다.
혹시 제 질문들에 대한 두루두루님의 생각이 너무 사적인거라면 이메일로도 답변 받길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쓰다 보니 너무 긴글이 되었네요. 죄송해요!!
아직 대학교 4학년이라면 전혀 늦은 게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배경 지식이 없다보니 드릴 수 있는 조언에는 한계가 있고, 제 얘기가 다 맞는 것도 아니니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본인이 가고 싶은 길이 없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각 직업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평생 직업이냐, 돈이나, 명예냐, 빨리 돈을 벌어서 은퇴하는 것이냐, 적당히 편하게 일하는 것이냐, 아니면 재미있는 일을 찾아보느냐 등에 따라 선택지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교수도 교수 나름입니다.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정도 되면 온갖 명예와 부까지 따라 갑니다. 지방대도 국공립이면 명예도 있고, 연금도 괜찮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면, 요즘 인터넷과 AI 등이 발전되면서 단순히 지식만을 전달하는 역할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고, 말씀하신대로 테뉴어도 확실치 않습니다.
M&A는 외국계 IB를 가시면 엄청 많은 돈을 받는 대신 본인의 생활이 없으실거고, 어느 정도 레벨에 올라가면 결국 영업이라 남에게 굽신 대야하고 출장도 많습니다. 솔직히 여자에게는 쉽지 않은 직업입니다. 또한 나오고 나서 운 좋게 기업에 들어가는 것 아니면 그 기술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이 내용은 M&A에 대한 제 다른 글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비슷하게 금융권은 젊은 나이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40대 초반부터 퇴직 걱정을 해야 하기에 내가 평생 일을 할건지, 결혼이나 출산 전까지만 할 생각인지 미리 결정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CPA와 변호사는 어디가나 을의 입장이긴 하지만 명예도 적당히 있고, 수입도 적당히 되고, 무엇보다 평생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게 장점입니다.
전공이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글에 쓴대로 취업을 늦추기 위한 석박사 진학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다만 교수가 목표시라면 학교 이름이 매우 중요하니 이점 고려하시어 진학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저에게 만약 선택권이 있다면 로스쿨에 가서 변호자 자격증 따면서 AICPA 공부하는 것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이러면, 회계사도 할 수 있고, 변호사도 할 수 있고, M&A도 할 수 있고, 심지어 (겸임)교수도 할 수 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대로 너무 폭넓은 질문을 하고 계신 것에 비해 아는 정보는 없다보니 구체적인 조언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각각의 방면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따로 만나 더 많은 정보를 듣고 종합한 뒤, 다시 한번 저를 포함해서 모든 분들께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답변 너무 감사드립니다! 조언 하신대로 좀 더 정보를 모아 알아볼께요 🙂 좀 더 구체적인 질문들을 갖고 언젠가 돌아오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해요!!